가루 한 움큼의 가능성(왕상17:8-16)
존재적 한계에 대한 착각 – 가루 한 움큼은 두 가지를 증명해준다. 인간의 한계성과 하나님의 무한성을 증명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한줌의 가루만 남아있는 가루 통에 형편이 좋은 시절에는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계속 가루를 채울 수 있는 풍요로운 상황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왕조 시대의 왕들이 자신을 신격화 했던 이유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도취된 결과였다. 그런 상황이 존재적 한계를 착각하게 만든다.
수단의 한계에 대한 착각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7)는 말씀은 인간의 수단적 능력적 한계를 지적한 말씀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물질적 수단과 물리적 힘이다. 그 힘의 배경이 되는 물질(가루)이 한 움큼 남은 상황이 되어서야 사람은 그 수단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무궁무진 할 것 같았던 가루도 계속 되는 기근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계획의 한계에 대한 착각 – (눅12:16-21)어리석은 부자는 예상 못한 대풍작으로 곡식 창고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풍요함을 누리는 미래의 꿈에 부푼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날 밤에 그 영혼을 부르실 계획을 갖고 계셨다. 인간의 계획이 일장춘몽에 지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을 계획을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에 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점 – 일반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이며 기독교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찾아오신 종교다.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찾아오시는 기회의 공통점이 있다. 배부른 상황이 아닌 배고픈 상황, 희망이 넘치는 상황이 아닌 절망적인 상황에 찾아오신다. 고난없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없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가장 희망적인 순간이 되는 이유가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엘리야)이 사르밧 과부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요구하신 것은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가루였다. 가혹한 요구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천 명의 식사를 해결할 때도 하나 뿐인 오병이어 도시락을 요구하셨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위하여 기근이 끝날 때까지 양식을 예비하셨다고 하신 사람이 가루 한 움큼 뿐인 가난한 과부 가정이었다.
하나님의 요구의 의미 – <누가 주인인가> 소유의 주인이 인생인가 하나님인가. 인생이 스스로의 양식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마지막 양식으로 생애를 마감해야 하는 처지가 그것이다. 인생이 주인이면 양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생존의 필수인 양식을 인생이 아닌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이다. 소유 전부를 요구하시는 이유가 바로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만이 인생의 양식을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의 의미 — <나의 일부가 아닌 전부> 생명과 같은 마지막 남은 가루 전부를 요구하시는 것은 나 자신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나의 물질을 아닌 나라는 존재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소유한 물질이 필요하거나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물질은 나의 소유의 전부요 바로 나 자신이다. 마지막 남은 전부를 요구하시는 것은 나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삭을 요구하신 것은 아브라함을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의 의미 — <물질이 아닌 순종과 믿음> 하나님은 물질이 필요하고 양식이 필요한 분이 아니다. 육신의 목숨과 같은 물질을 요구 하심은 우리의 순종과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순종과 믿음은 실질적으로 물질과 육신과 시간을 통하여 확인되고 증명된다. 물질도 없어서는 안될 수준의 것, 시간도 없어서는 안될 수준의 것을 요구하신다. 부자 청년에게 재산 전부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예수님)를 따르라고 했을 때 부자 청년은 되돌아갔다.
하나님의 요구의 의미 — <물질 수단, 말씀 수단> 생존의 수단이 두가지가 있다. 물질 수단이 있고 말씀 수단이 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생존 수단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사람이 떡으로 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믿는 사람은 말씀이 생존 수단이며 세상 사람은 물질이 생존 수단이다. 물질 수단은 결국 죽는 수단이 되고 말씀 수단은 사는 수단이 된다.
한 움큼의 가루가 증명하는 것 – 한 움큼의 가루는 두 가지를 증명한다. 인간의 한계를 증명하고 하나님의 무한 능력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바알 신이 지배하는 시대에 참 신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고 그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증명하셨다. 한 줌의 가루에 지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해도 말씀을 순종하고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이 땅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