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과 그 때(마24:36-39)

‘때’를 깨닫는 것 – 사람으로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것이 많지만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시간(때)에 대하여 깨달아야 한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 삶을 산다. 시간은 수명을 말하고 시간 사용은 목숨을 사용하는 것이다. 길을 갈 때 도착하도록 순간 순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시대적으로는 지금이 언제인가, 주어진 시점의 의미를 모르면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그 날과 그 때 – 확정된 인류 역사의 종결 시점이 <그 날, 그 때>로 표현되어 있다. 인류 최후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류 역사를 마감하고 인류를 심판하는 시점이 된다. 시간의 기능이 있다. 시작을 결정하고 끝을 결정한다. 시간의 불가항력적 특징이 있다. 정지가 불가능하다. 변경이 불가능하다. 대체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시대적 종말 결정은 누구도 변경이나 연기, 보류가 불가능하다. 

그 날과 그 때 – 역사의 시작과 끝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진행하시고 그 계획을 종료하시는 하나님은 역사의 계획자이시며 진행자이시며 종결자이시다. 하나님의 계획은 낮과 밤의 약정을 변경 시킬 수 없는 것 같이 변경이 불가능하다.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하는 그 계획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스케줄의 신빙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기전에 피할 수 없는 결정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지혜이다.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미래의 사건을 이미 과거의 사건을 통해 미리 보여 주신 것을 상기 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과거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Sample을 보여 주시고 경험하게 하신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 속에 미래의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숨겨 놓고 계시기 때문이다.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 –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확정된 계획이며 그 계획은 비밀리에 추진되는 극비 사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복음의 선포인 것이다. 노아의 시대의 종말적 심판과 역사적 종말의 심판의 양상과 특징의 일치성을 증명하는 의미에서 비교하신 것이다. 성경은 말씀과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말씀은 반드시 사건으로 가시화되어 말씀을 증명하고 말씀은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홍수 전,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 홍수 심판 예고 후 노아가 방주에 대한 명령을 따라 방주를 짓기 시작하여 방주를 완성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방주 건축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무관심했다. 삽시간에 이루어진 건축 공사가 아니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 보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무관심하든 관심을 갖든 홍수 심판을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구원받는 사람과 멸망하는 사람이 구별된다. 

홍수 전,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 홍수 심판을 대비한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의 비교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식주 해결과 결혼이 목적이냐 수단이냐에 있다. 홍수 심판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사람은 의식주 해결과 결혼이 목적인 삶을 산다. 홍수심판을 위해 방주를 준비하는 사람은 의식주 해결과 결혼의 목적이 방중에 있다. 방주와 무관한 삶은 멸망을 준비하는 삶이며 방주를 위한 삶은 영생을 준비하는 삶이다. 

홍수 후, 다 멸하기까지 – 홍수 심판 경고를 무시한 사람도 준수한 사람도 피할 수 없이 홍수를 목격하게 된다. 예수 재림을 무시한 사람도 믿은 사람도 재림을 목격하게 된다. 구원받는 사람과 못받는 사람의 차이는 홍수 발생의 차이가 아니라 방주 준비 여부에서 차이가 나고 재림 성취의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 준비의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홍수 심판을 인정하든 부정하든 각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홍수 심판을 피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홍수 후, 다 멸하기까지 – 원하든 원치 않든 믿든 안 믿든 홍수 심판은 모두에게 임한다. 재림도 마찬가지다. 온 인류가 목격하게 된다. 만민이 목격할 수 있도록 재림하신다. 목격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증명하시기 때문이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까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재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최종 단계이기 때문에 인류는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목격하게 된다. 

심판 예고에서 심판까지 –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예고하시고(창6:3,13)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준비하게 하시고 심판 직전 최후 경고를 하시고 방주에 승선하도록 하신다. 만약 이때라도 심판을 믿고 노아를 따라 들어 갔으면 구원받았을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노아의 행동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았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드디어 말씀대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깨닫는 것 만큼 크고 근본적 은혜가 없다. 하나에서 백까지 출생에서 죽을 때까지 은혜가 아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은혜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