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날(창6:13-16)

때의 양면성 – 한 시점이 두 가지 기회가 된다. 홍수 발생 시점이 두 가지 기회가 된다. 노아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고 세상 사람들은 심판과 멸망의 기회가 된다. 홍해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과 승리의 기회가 되고 애굽 군대는 멸망과 죽음의 기회가 된다. 홍수 기회가 969세 되는 므두셀라에게는 수명의 끝이 되고, 600세 되는 노아에게는 노아 가족을 통한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 된다. 모든 기회는 두 가지 기회가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생존 목적이 기회를 결정한다 – 기회가 어떤 기회가 되느냐는 생존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생존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존의 목적이 중요하다. 두 가지 인생이 있다. 목숨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목적이 있는 인생이 있고 무엇을 위해 목숨이 필요한가에 목적이 있는 인생이 있다. 필연적인 수명의 끝이 다가온다. 수명의 끝에서 무엇에 의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것인가 목숨의 보존을 위해 산 사람과 목숨의 사용을 위해 산 사람이 있다. 

끝 날(내 앞에 이르렀으니) – 끝 날이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의 종말이 다가오고 시대적 종말이 다가온다. 시작이 있기 때문에 끝이 있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 시작된 모든 인생에게 다가오는 끝 날의 목적은 심판에 있다. 구원과 멸망, 상급과 형벌의 심판이 끝 날의 목적이다. 끝 날 이후 상급이 시작되고 형벌이 시작된다. 영생이 시작되고 영벌이 시작된다. 끝 날의 시점은 미래적이며 현재적이다. 미래의 현재가 끝이 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세가지 – 범사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모든 일은 시작된 후 시간이 경과하면 반드시 끝이 오고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모든 인생은 출생 후 때가 되면 반드시 죽음이 온다. 죽음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시작된 인류 역사는 종말이 다가온다. 종말은 재림과 심판이 있다. 심판에 의해 인류는 영생이 시작되고 영벌이 시작된다. 피할 수 없는 세 가지를 준비하는 것이 육신의 시간이다. 그 준비 여부가 영원한 후회 여부를 결정한다. 

끝 날의 특징 – 끝 날의 원어 <케츠>는 시간의 끝, 공간의 끝을 말한다.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죄악을 채울 공간이 남아 있지 않고 죄악을 채울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케츠의 다른 의미는 ‘잘라 버렸다’이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잘라 버렸다.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 왕에 대하여 하나님의 카운트가 끝난 그 밤에 그는 암살당하여 생애가 끝난다. 

끝 날의 특징 – 끝 날의 공통적 특징이 있다. 노아의 경우를 보면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있던 자만 남았더라”(창7:23) “바알 선지자는 사백오십인이로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느니라”(왕상18:22).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리라”(렘5:1) 종말의 중요한 특징은 의인 한 사람이 희귀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남은 의인이 단 한사람 뿐인 시대가 마지막이다.  

끝 날 준비 – 인간의 죄악의 관영을 보시고 하나님은 인생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하며 홍수 심판을 결정하신다.(창6:3,7) 홍수 심판을 결정하신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 준비를 명령하신다. 방주 건축 명령을 받은 노아는 100년 동안에 걸쳐 방주를 준비한다. 필연적인 홍수 심판 앞에 방주를 준비하는 사람과 방주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게 된다. 목적이 멸망이 아닌 구원에 있는 하나님은 충분한 준비 시간을 주신다. 그 배려를 무시하느냐 준수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끝 날 준비 – 심판을 결정하신 하나님은 즉시 시행하지 않고 준비를 위해 유예기간을 주신다. 죄인인 인생은 출생 순간 심판이 확정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심판의 확정이 육신의 사망 때 집행되는 것이다. 생존 기간은 사망 집행 유예기간이며 사망 해결 준비기간이다. 생존 기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받는 것이다. 구원을 대신할 것이 전혀 없다. 어떠한 성공도 사망의 집행을 대신하거나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끝 날 준비 목적 –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창6:14) 방주 건축 명령은 철저히 나를 위해서이다. 결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 홍수에 빠져 죽지 않는다. 방주는 나를 위하여 구원도 나를 위하여 순종도 나를 위하여 기도도 나를 위하여 믿는 것도 나를 위하여서 이다. 헌신도 나를 위하여서 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끝 날 준비 방법 – 나를 위한 방주이지만 방주 준비하는 방법은 나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한다. 나의 방법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 나를 위한 것이지만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구원의 목적은 나를 위해서지만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다. 축복도 나를 위해서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르밧 과부의 가루 사용을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방법으로 해야만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