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도전(사43:18-20)

보라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의 강을 내리니 –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현장을 보려면 광야에 사막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행하심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는 현장이 바로 광야와 사막이다. 문제는 내가 그곳에 있는가 이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는 애굽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받기 어렵다.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의 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광야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의도가 그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있는 시간 – 내가 있는 곳이 애굽인가 광야인가 내가 있는 시간이 과거인가 미래인가 본문 18절에 ‘이전 일을 기적 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지 말라’는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가 애굽이 아닌 광야이며 과거가 아닌 미래여야 한다는 말이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와서 과거로 흘러간다. 현재라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순간적이다. 순간 순간이 미래에서 과거로 바뀌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도전하지 않으면 불가항력적으로 과거로 밀려난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이유 – 광야 길은 두가지 방향이 있었다. 블레셋 땅과 홍해 방향. 그 중에 홍해 방향을 택하신 이유는 애굽으로의 유턴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전진 뿐이다. 퇴로를 차단하신것이다. 전진하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광야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퇴로를 차단하시고 하나님과 말씀 그대로 역사하시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구름 기둥과 하나님의 방향은 오직 전진 뿐이다.

광야(믿음의 범위) – 인생은 보이는 범위와 보이지 않는 범위로 구성되어 있다. 믿음의 근거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증거이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11:1)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이다. 현세아닌 내세이다.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세상 사람은 보이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인생의 문제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광야(순종의 범위) – 인생의 어려움은 이해가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이해가 불가능한 문제에 있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순종도 이해가 가능한 범위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범위가 문제가 된다. 순종이 지식 범위 안에서는 가능하지만 지식을 벗어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이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순종이 필요한 이유는 이해가 가능한 지식의 범위 때문이 아니라 이해가 불가능한 말씀대로 하기 위함이다.

광야(가능성의 범위) – 인생의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불가능한 문제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가능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불가능한 문제 때문이다. 불가능한 문제 때문에 믿음의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은 믿음이 필요없다. 우리 능력으로 불가능한 문제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한 문제가 하나님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광야(한계의 범위) –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대표적 특징은 한계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한계를 깨닫는 것이 기본적인 깨달음이다. 한계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상황이 광야 상황이다. 광야는 한계적인 인생이 어떻게 한계를 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체험의 현장이 된다. 광야는 출발부터 한계에 직면하는 환경이다. 그 환경에서 능치 못함이 삶을 사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광야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범위 –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가 보이는(현세) 범위까지 인가 보이지 않는(내세) 범위까지 인가. 알 수 있는 범위까지 인가 알 수 없는 범위까지 인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범위까지 인가 불가능한 범위까지 인가.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무한성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적 자산이다. 자산은 보이는 자산과 보이지 않는 자산, 유형의 자산과 무형의 자산이 있다. 하나님이 자산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한한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다.

입을 넓게 열라 – 입을 넓게 여는 Size는 누구의 Size 만큼인가 분명히 하나님의 Size이다. 입을 열 때 내 Size로 열면 내가 채워야 하고 하나님 Size로 열면 하나님이 채우신다. 구하는 수준이 순종의 수준이 믿음의 수준이 내 수준인가 하나님의 수준인가. 내 수준으로 구하는 것은 나에게 구한 것이다. 내 수준으로 순종한 것은 나에게 순종한 것이다. 내 수준으로 믿는 것은 나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 수준으로 구하고 믿고 순종해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