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죽는 장소가 다르다. 장수 생애의 마지막 장소는 전쟁터이다. 장수는 전쟁터에서 죽어야 영광이다. 어느 장소에서 죽느냐가 인생의 최종 평가를 결정하게 된다. 소방수는 불을 끄다가 죽으면 영광이다. 종군기자가 전쟁터에서 죽을 확률이 높지만 죽을 때 전쟁터에서 취재하다 순직하면 그 죽음은 최고의 죽음이 된다. 후지산이 폭발할 때 기자 한명이 근접 촬영을 시도하다가 용암이 흐르는 것을 피하지 못하여 용암에 묻혀 죽었다. 그의 품안에는 최후까지 몰려오는 용암이 생생하게 찍은 사진기가 안겨 있었다. 그 카메라를 꼭 안고 죽었기에 그 안에 생생한 사진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누구도 촬영할 수 없는 사진을 남기고 죽은 것이다. 

그 기자의 죽음은 그 사진으로 인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죽음이 되었다. 고상돈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히말라야를 처음 등반한 사람이다. 두번째 등반하다가 그 산에서 죽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관계로 그의 무덤이 한라산 1100m위에 있다. 산사람이기에 산에서 죽어 산에 묻혔다. 사명과 임무에 따라 삶을 마치는 장소가 다르다. 

스위스 종치기 이야기가 있다. 교회에서 40년 동안 종을 치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병석에서 보니 종을 칠 시간이었다. 그는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나를 일으켜 줘!” 부축을 받으면서 종을 치러 갔다. 그리고 종을 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종치기는 종 앞에서 죽었다. 종치기를 하찮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전쟁터에서 죽은 장수의 죽음과 다를바가 없다. 그 종소리는 많은 사람을 위해 울렸고 마을 전체를 위해 울렸다. 마을 사람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임무를 위해 살다 죽은 것이다. 

장수는 전쟁터에서 죽는다. 장수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적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회유와 위협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죽음을 맞이한다. 주어진 임무를 위해 책임을 다한다. 순국열사 중에 가장 나이 어린 여학생이 있다. 유관순 열사이다. 유관순열사는 독립운동하다 체포되어 형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 앞에서도 그녀의 한결같은 소원은 대한독립이었다. 

아프리카의 탐험가로 많이 알려진 리빙스턴은 어려서 선교에 헌신했다. 1813년 3월19일 스코틀란드 블란타이어의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서적을 읽다가 스스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은 그는 방직 공장에 다니면서 장래를 생각하는 가운데 중국에 의료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선교사가 되기 위해 글래스고에 있는 앤더슨 의과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면서 런던 선교회에 지원서를 냈다. 

27세 때 공부를 마치고 중국 선교를 떠나려 했으나 아편전쟁으로 취소되고 스코들란트 선교사 로버트 모펫을 만난 인연으로 남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하게 된다. 아프리카를 기독교 선교에 개방 시켜야 한다는 집념에 따라 과감한 탐험 계획을 세우고 선교 개척에 평생을 헌신하여 오늘 날과 같은 기독교가 자리잡게 만든 위대한 탐험가요 선교사이다. 본국 영국에서는 영웅 칭호를 부여할 정도였다. 

온갖 풍토병과 싸우며 선교에 자신을 불태우던 리빙스턴은 1873년 5월1일 기도하는 자세로 하늘나라에 갔다. 미래의 선교를 위해 길을 개척하는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다. 그의 가족들은 살아서는 제대로 만난 적이 없이 하늘 나라에서의 재회를 기대해야 했다. 그는 육신까지 바치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모습으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그의 생을 마쳤다. 

철학자 플라톤에게 어느 날 청년이 찾아와서 말했다.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플라톤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철학을 미친듯이 좋아하고 미친 듯이 사랑하고 철학을 위해 죽을 수 있느냐?” 오직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인생은 하루 세끼 밥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위해 살아간다. 삶 전체를 바칠 수 있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을 바쳐야 할 장소가 정해진다. 거기서 생의 끝을 맞이 하는 것이다.   

주어진 임무와 사명에 따라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자리가 있다. 인생의 최후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찾아온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최후를 맞이 하게 되느냐가 인생의 결과가 된다. 어느 권사님이 새벽 예배에 가다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교인들이 수군거렸다. 목사님이 참담한 심정으로 강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권사가 어디가다 죽어야 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