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업 간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광야에서 생존하고 홀로 서 본 남자의 이야기이며 정년이 보장되지 않고, 안락한 노후를 장담할 없는 21세기 고령화 시대에 고민하는 40·50대에게 보내는 생생한 인생 실화이다. 필자가 사표를 던진 이유의 핵심은 인생의 독립선언이었다. 기득권을 누리며 안주하기보다는 벗어나 독립해보겠다는 뜻이었고 밑바닥부터 다시 헤쳐 헤쳐 나가겠다는 호기있는 결단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 못했고 표피적으로만 보고 비판하고 오해했다. 잘 아는, 오랫동안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는  본인의 진정성이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설령 실수나 잘못으로 회사를 나왔더라도 친구 사이라면 감싸고 격려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고, 일반사람보다 더 혹독한 기준으로 공격했다. 재직시에는 온화하게 대해주던 모습은 사라지고 매우 비판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말 가운데는 단 한번의 격려도 없었다. 

주변의 반응은 ‘너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세파에 적응할 자세도 되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 빌라’는 것이다. 평소와 다른 언행, 계속된 공격과 비판에 필자는 입맛이 썼다. 집에 돌아갈 때 평소대로 강부장은 선배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서로 말이 가다가 차가 중간쯤 왔을 때다. 갑자기 선배가 말했다.

“차에서 내리게” 강부장은 순간 말을 알아듣지 못해 뭐냐고 되물었다.“차에서 내리란 말이야. 여기서. 지금” 그때까지도 정확한 그의 말뜻을 못알았다. “아니 선배, 나는 양재동까지 가야지” “글쎄 여기서 내리란 말이야. 말귀도 참 못알아듣네”그의 역정어린 소리에 비로서 자초지종을 깨달았다.“알았어. 내릴게”내리자마자 차는 횅하니 떠나갔다.  1월말 영하 10도의 추위가 두꺼운 오버 속을 엄습했다. 거리에는 추운 날씨에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갑자기 속에서 불덩이같은 것이 치솟아올랐다. ‘참 더러운 세상 인심이구만.…’내 판단에 따라 내가 회사를 나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다. 손도 벌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런 식의 대우를 받아야 하나. 그것도 내가 아주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한테…. 

충고라면 좋다. 쓴 약은 몸에 좋은 법이다. 그러나 그가 이 날 보여준 언행은 충고가 아니라 단절이었다. 더 이상 서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앞으로 이런 더러운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새삼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한쪽으로 감정이 격앙돼 호흡도 곤란할 정도인데 마음 다른 한편에선 아주 냉철한 또 다른 자아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을 너는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바로 네가 기대하던 것이 이런 상황 아니었나? 어려운 상황을 직접 맞닥뜨려 보겠다는 것. 그 상황에서 느끼는 좌절, 분노나 감정을 억제하고 다스리겠다는 것. 그 과정을 거치면서 너를 사람답게 만들자는 것.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네가 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고생을 사서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는 저 선배에 대해 감사해야 된다. 그가 인생의 냉혹함과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관계의 허실(虛實)을 웅변적으로 보여줘 너를 깨닫게 만든 사람이기 때문에…한 가지 유의할 점은 절대 저 사람에 대해서 분노나 미움의 감정을 갖지 말아야 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너만 손해다. 사람이 누구에게 그런 감정을 갖고 산다는 것부터가 힘든 일이다. 그런 데 휩싸여 에너지를 낭비하기에는 너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차라리 고맙다고 생각하자. 인생의 한수를 가르쳐 줬다는 점에서….”어느새 강부장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 만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회사의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몰랐던 눈물과 회한이 엄습해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꽤 많은 세월을 두고 확인하게 되는 신호탄이었다. 

직장 문제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다. 만회할 기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구원에 관한 기회는 일회적이다. 주어진 사명에 대한 기회도 일회적이다. 생명의 기회가 일회적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의 자세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결연한 자세로 임무에 임해야 한다. 필사적인 자세여야 한다. 한번 뿐인 인생을 여러 번 사는 것처럼 사는 자세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명을 위한 삶이다. 사명이라는 달란트를 감당해야 한다. 달란트는 내 임의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주인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감당해야 한다. 임무를 감당한 종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있었고 불충성한 종에게는 책망과 징계가 있었다. 무책임과 불성실에 대한 변명과 핑계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저한 회개만이 살 길이다. 기회가 다시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